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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마가복음

무엇을 보는가?

by ongdalsem 2020. 9. 18.

마가복음 131-8

 

어느 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성전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고개를 돌려 성전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제자가 들뜬 기분으로  예수께 말했다.

선생님 저 건물 좀 한번 돌아보십시요, 엄청나지요? 정말 대단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뒤로 돌아서서,

한참 물끄러미 성전의 웅장함을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다.

너히들 눈에는 저 성전의 웅장함밖에 보이지 않느냐?

두고 보아라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다.

 

그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래서 '헤롯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려 46년이나 걸려서 아주 호화롭고 아름답게 지어 놓았다.

주춧돌 하나의 크기가 길이 12m, 높이 4m, 폭이 6m나 되고.

바닥은 아프리카산 녹백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고 전해온다.

멀리서 보면 바닥이 바다같이 보였으며

본 건물 앞 부분에는 금판을 입혀서 햇빛에 반사된 성전은 마치 찬란한 황금성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성전 안에서 예수께서는 이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거짓된 신앙을 통렬히 꾸짖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버렸구나”.(11:17)

제자들과 예수님은 성전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달랐다.

 

제자들은 현재만 바라보았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비록 지금은 땅에 거하지만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추구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다(참조, 벧후 1:4-9).

제자들은 성전 건물의 화려함에만 관심이 있었고,

정작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는 무관심했다영적 지혜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 ) 하고 말했다

제자들은 성전의 외형만 보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 건물 자체를 이스라엘의 이상으로 여기며, 우상화했다.

우상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신격화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2 )고 물으심으로 제자의 어두운 시각을 책망하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 )고 하심으로,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계셨다.

 

제자들은 오늘의 성전 모습만 보았고, 예수님은 장래의 성전 모습을 보셨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모습'만 보았지만 예수님은 성전의 '정신'을 보셨다.

세속화로 부패되어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참조, 11:15-17)은,

겉모양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소멸되고 말 것이다.(대하 33:7-10).

세상의 사물과 사건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

사물을 바로 보려면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그 화려한 성전을 모두 무너뜨려 버리고 서쪽에 있는 벽 하나만 남겨 두었다.

이것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 벽을 잡고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있지 않으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된 것이다.

 

세상 종말을 내다보는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1-2)

바로 얼마 전에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外飾)과 위선을 책망하시는 것을 보았다.(12:38-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도 성전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식과 부패상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성전의 외면적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영적으로 몽매한 상태를 꿰뚤어 보시고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으며,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그 때에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가를 물었고,

이에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예언하기 시작하신 것이다.(4-8절)

 

제자들의 눈에는 그저 외관상 웅장하고 찬란한 성전 건물 만 보였지만,

예수께서는 화려한 성전의 종말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시대를 바로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외관상 보기에 소망이 있어 보인다고 낙관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빠져 실상을 놓치고 정작 대비해야할 종말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처럼 외적인 성취만을 쫓아다니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종말의 경고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기루 같은 세상의 열락을 끝도 없이 쫓아다니는 허망한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의 뉴스 보도를 접할 때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지날 때 마다 더욱더 신앙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내다보는 깨어있는 신자의 모습인 것이다.

 

미혹을 당하지 않는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5-6)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말세에는 미혹하는 사람이나, 미혹하는 사건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스스로 자기가 메시야요, 재림 예수라고 떠들며 가장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거짓된 꼬임에 넘어가 실족당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6)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다.(벧 전5:8)

 

초대교회 당시에

드다라는 사람(5:36)과 갈릴리에 사는 유다(5:37)라는 사람과, 시몬이라는 마술사(8:9)가,

각각 자칭 메시야라고 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킨 적이 있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자칭 메시야라고 떠벌였던 자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특히,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칭 메시야라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켜 영혼과 재물을 삼켜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그런 일로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질만 풍부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과학우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물리학, 유전공학, 컴퓨터테크놀로지 등,

첨단 기술이 세상을 다소 편리하게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혼돈된 세상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어야 한다.(2:8; 요일 3:7)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7-8)

말세에는 두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세계의 급변하는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도무지 화해하지 않을 것 같던 동서가 화해를 하고 평화를 부르짖고 있으며,

소련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중동에는 전쟁의 포화가 그치지 않고 있으며,

세계 도처에서 지진과 기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딤후 1:7)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기때문이라고 성경이 말씀한다.(8:26)

흔들리지 아니하는 신앙의 터 위에 견고하게 서있어야 한다.(고전15:58)

 

예수께서는,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 14)

라고 말씀하셨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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