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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사도행전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

by ongdalsem 2020. 8. 4.

사도행전 9장 10-22절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 나무 그릇이 있고, 사기 그릇이 있다. 유리 그릇도 있고, 쇠그릇도 있다. 은 그릇이 있는가 하면 금 그릇도 있다. 그릇마다 모양이 다르고, 용도가 다르다. 그런데 그릇의 가치는 그 그릇을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가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담으려 하는가 하는 것이요, 무엇이 담겨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더러운 것을 담아두면 좋은 그릇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서 ‘질그릇’이라고 했다. ‘질그릇’은 그릇 중에 가장 약한 그릇이요, 값이 나가지 않는 그릇이다.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요,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 그릇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오척단구(五尺短軀)요 안질(眼疾), 혹은 간질(癎疾)을 평생 가지고 있던 불치병(不治病) 환자였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바울이 자기를 가리켜 스스로 말하기를, ‘보배를 담은 질그릇’(고후 4:7)이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이 겉 보기에는 질그릇 같이 보잘 것이 없지만, 그 안에 귀중한 것이 들어 있으므로 아주 귀한 존재라는 말이다. 사람의 가치는 외형(外形)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맹이는 별 것 아닌데 포장만 고급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대 포장이다. 세상 사랍들은 외모(外貌)를 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사도 야고보는, ‘외모를 보고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짖는 것’이라고 했다.(약 2:9)

  바울은 자신만을 가리켜서 귀한 존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 모두를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믿는 사람 모두가 귀한 존재요 가치있는 존재라는 말씀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그렇게 건강하지 못해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가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복음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두려울 것도 없다. 바울은 이 확신을 가지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8-9)고 외쳤다.

  본문말씀 가운데,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이 있다.(15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쓰시려고 직접 택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좋고 나쁘고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고 하면 그보다 더 값진 그릇이 어디 또 있겠는가? 아마 골동품 가치로도 엄청난 값이 나갈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갑자기 귀한 존재가 되었다. 본래 그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메시야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교회를 잔멸(殘滅)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다.(8:3)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옆에서 지켜 보면서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는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을 향해서 떠났다. 기독교인이 있으면 잡아 오려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점심때쯤 되었는데(행22:6)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그에게 비취었다. 그리고는  음성이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 그때까지 사용하던 바울의 이름이었다. 이 후로부터는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바울은 너무 놀랐다. 땅에 납작 엎드려서 물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다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3-5절) 바울은 예수를 핍박한 적이 없다. 다만 교회를 핍박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를 핍빅했다는 것이다. 성도를 핍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예수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던 바울을, 하나님은 친히 쓰실 그릇으로 택하셨다. 바울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으로 끌려간 것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은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인데, 구해 주시는 것이다.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오히려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바울이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친히 쓰시려고 변화시키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에수 믿고 구원 얻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불러 주시고 믿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있는 모든 죄를 정하게 하시고 일꾼을 삼으신 것이다. 바울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내자랑, 지도자 자랑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고린도 교회가 어렵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도자들을 자랑하기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당이 생기고,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시고, 주님 한분 만을 자랑할 것뿐이다.

  바울이 변화된 것은, 그가 방탕하던 삶을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 기독교적인 삶에서 기독교적인 삶으로 바뀐 것이다. 마음이 기독교적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기독교적으로 바뀌었다. 행동이 기독교적으로 바뀌었다. 마음 속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어내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업도 바꾸었다.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다. 상당한 지위와 권세가 있었다. 모두 버렸다. 그리고는 천막 짓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직업도 바꾼 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처녀가 있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 마을에 사는 한 청년으로부터 청혼이 들어왔다. 그 청년은 아주 집안이 좋다. 부자다. 그리로 시집을 가면 한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다. 다만 신랑 될 사람의 외모가 그리 번듯하게 생기지 못한 것이 흠이다. 딸 가진 부모가 얼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있는데 또 다른 청년으로부터 청혼이 왔다.

  이 청년은 서쪽 마을에 살고 있는데 아주 잘생긴 미남이다. 누가 보아도 첫눈에 반해버리게 생겼다. 그런데 집안이 좀 가난하다. 시집가서 살면 고생이 좀 될 것 같다. 어찌해야 좋을지 얼른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그 부모는 딸을 불러 놓고, 어느 집으로 시집을 가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처녀는 한참 생각하다가, ‘밥은 동쪽집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집에 가서 잘래요.’ 하는 것이었다. 이쪽, 저쪽 모두 미련이 남아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철저히 돌아섰다.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찬송하며 돌아섰다. 지난 날 자랑으로 여기던 것들을 분토(糞土)와 같이 여기고 모두 깨끗이 버렸다.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이 기질(氣質)이 필요하다. 그래야 참 예수 안에 살게 되는 것이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친히 쓰실 그릇으로 택하셨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좋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옛날의 내가 아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 났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그릇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다. 이 은혜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늘신하게 두드려 맞고 감옥에 같혀서도 찬송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친히 불러 내시고 택하셨다고 해서 내 앞에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난이 나를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롬 8:28)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하나님의 그릇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된 자부심을 가지고, 맡은 일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칭찬 받은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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