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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사도행전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

by ongdalsem 2020. 8. 7.

사도행전 1024-35

  사람은 누구나 인정 받기를 원한다. 관심을 끌려 한다. 인정 받지 못할 때 소외감을 느낀다. 바울도 그랬다. 사도 된 것을 아무도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사도들을 찾아 가도 시큰둥하게 여겼다(행9:26). 그러나 바울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했다. 사람 앞에 자랑할 것도, 사람에게 인정 받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칭찬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에 과도히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치욕을 당하는 수가 많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나님을 앞세워 이것 저것을 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마 7:22-) 하는 말씀을 듣게 되면, 이 세상에서 받은 칭찬도,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은 인정도 모두 쓸데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나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시고,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본문의 내용은 고넬료(이방인)와 베드로(유대인)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고넬료는 유대나라를 다스리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가이사랴 지방에 살고 있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드러내놓고 만날 수가 없는 처지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앙과 문회의 조화는 선교에 필수적이다. 조화를 이루려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여자가 부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남자가 부엌 일을 한다.

  베드로도 이빙인인 피자 시몬의 집에서 밥을 먹으려니 마음이 꺼림직 했을 것이다. 그들은 우대인들이 먹지 않는 것을 먹기 때문이다. 아마도 베드로에게는 이방인을 멸시하는 전통적인 잠재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도 유대인으로 유대 문화권 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2장 12절에 보면, 안디옥 이빙인의 집에서 먹다가 야고보가 오는 것을 보고 도망갔던 일이 있다. 그것 때문에 바울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했다. 쓸데 없는 전통 문화 에 매여서 외식(外飾)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할 때, 외식하게 되는 것이다. 속은 안 그런데도 겉으로는 그런 체 해야 하는 것이다. 담배 피우면서 안피우는 척, 술 마시면서 안 마시는 척, 그런다고 하나님이 모르시는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이방인은 속되고 유대인은 거룩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 할 수 없는 것이다(10:15). 나는 거룩하다고 생각하며 안 믿는 사람 만나지도 않으면 무슨 전도가 되는가?

  하나님은 유대인인 베드로와 이방인인 고넬료를 서로 만나게 하셨다. 그들은 평소에 서로 만날 이유가 없는 사이였다. 서로 상대가 되지 않는 사이였다. 고넬료의 입장에서 베드로는 하챦은 사람이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고넬료는 이방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음으로 서로 만났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의 습관과 편견을 버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다. 기도에 힘썼다.

  누구를 하나님이 받으시는가? 사람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빈부 귀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35절) 외모가 문제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구제하는 자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받으신다. 하나님은 그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함께 하신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말했다. “너는 내개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나님은 나와 너를 차별하시지 않으신다. 다만 말씀 순종하는 자를 받으시는 것이다.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 있는 심정으로 베드로를 맞았다. 상대도 안되는 베드로를 문간에 나가서 절하고 맞아들였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므로,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 하고 맞아들였다. 고넬료,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사람이다. 견건한 마음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많이 구제하였으며,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이다.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사랑하기 싫지만 사랑하고, 용서하기 싫지만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받으시는 귀한 삶이 되는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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