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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레위기

참으로 자유하려면

by ongdalsem 2020. 7. 29.

레위기 5장 1-6절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마찬가지다. 동물 연구가들이 침팬지에게 140여 가지의 Sign Language를 가르쳐 주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을 잘 맞추어 주어서 아무런 불편이 없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 연구가들이 모여서 침팬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침팬지로 하여금 자유롭게 배운 것을 가지고 의사표시를 하게 했더니, 그 침팬지가 한 말은, ‘Let me go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같은 것이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유의 여신’ 상이 미국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왔다. 미국은신앙의 자유를 찾아 바다를 건너 온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다. 그러면 미국은 자유가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나라인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내가 자유롭자고 다른 사람을 부자유하게 하면 범죄가 되는 것이다. 무단히 남의 집에 들어가 귀챦게 굴면 가택(家宅) 침입(侵入)죄가 된다. 내 기분 좋자고 무단히 남을 때리면 폭력(暴力)죄가 된다. 내가 좀 유익을 보자고 다른 사람을 속이면 사기(詐欺)죄가 된다. 이렇게 볼 때에 무제한적(無制限的)인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니다. 오히려 제한이 있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일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입은 성도들은, 오히려 그 자유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의 자유함을 침해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한다. 내가 좋게 여긴다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갈5:13) 세상 사람들은 세상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함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안에서 자유함이 있다. 내가 하고싶은 말 다 하면 때로 그것 때문에 상대방이 마음을 상할 수가 있다. 세상 법은 이런 것을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안에서는 그 것이 허물이 되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하기 쉬운 몇 가지 죄를 지적하고, 그것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며, 그 속죄제를 통해서 속죄함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야 진정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속죄의 제사, 예수 앞에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용서함 받는 것, 이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어떤 죄를 자복해야 하는가? 

  진실(眞實)하지 못한 것을 자복해야 한다. 누구든지 증인(證人)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 을 진술치 아니하면 위증죄가 되어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간다.(1절) 재판을 하려면, 원고(原告) 측이나 피고(被告) 측이나 모두 ‘증인’을 세운다. 그런데 이 증인이 증언을 잘못하게 되면 재판 결과가 엉뚱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증인이 재판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면 ‘위증죄(僞證罪)’로 처벌을 하는 것이다. 증인은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안되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해도 안된다. 그 이유는 둘 다 진실치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진실하지 못한가? 자기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체면이 손상될까 두려워서 그렇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믿음과 선한 양심은 성도들의 삶의 두 축(軸)이다. 선한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한 믿음이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한다.(딤전 1:19) 배가 부서지면 그 안에 타고있던 사람은 재난(災難)을 입는다. 양심을 버린 믿음은, 부서진 배와 같아서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기 십상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다.(약1:26)

  깨끗하지 못한 것을 자복해야 한다. 부지중(不知中)에라도 부정(不淨)한 것을 만지면,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된다.(2-3절) 짐승의 사체(死體)를 만지면 허물이 있다고 말씀한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서 되어진 결과이다. 그것은 죄의 결말(結末)이다.(롬 6:23)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죄악의 길에 가까이 하지 마라는 것이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씀이다. 성도의 삶이 죄와 가까이 함으로 거룩성을 잃게 되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기도가 막히고, 마음에 평안을 잃게 된다. 심령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죄를 멀리하는 것이 성도의 가야 할 바른 길이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살전 5:22) 3. 경솔(輕率)하게 말하고, 경솔하게 맹서(盟誓)한 것을 자복해야 한다.(4절) 무심코 한 말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무심중에 말한다는 것은, 거칠게 말한다는 것이고, 함부로 지껄인다는 것이다. 맹서는 보통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게 되는 것인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임직식, 결혼서약 등,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맹서(猛暑)들이 있다. 이 맹서들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말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죄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자복하고 속죄함을 받아야 한다. 성숙한 신앙인은 혀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주는 일들의 대부분이 함부로 말하기 때문에 생긴다. 꼭 필요한 말은 해야 하지만 말을 아끼는 것도 지혜다. 빚을 진 사람은 결코 자유롭지가 못하다. 빚 준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諒解)를 구하든지, 아니면 빚을 갚든지 해야 자유로와 진다. 우리가 부지중에 지은 죄도 마찬가지이다. 보상을 하든지, 자복하고 사죄함을 받든지 해야 그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복하고 사죄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것이다. 그 앞에서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사죄함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갚아야 할 것은 갚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입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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