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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레위기

하나님과 이웃

by ongdalsem 2020. 7. 29.

레위기 6장 1-7절  

 

성경에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세가지 경우를 말하고 있다. 첫째, 여호와의 성물(聖物)에 대하여 범죄했을 때(레 5:15-16), 2) 둘째,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했을(레 5:17-19), 셋째, 이웃간에 서로 범죄했을 때(레 6:1-7)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속건제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데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지내도록 창조되었다. 불신자도 무의식중에 ‘Oh, My God이라고 외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고통이 있고, 죄에 빠지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서야,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어느 날,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에게서 꼬투리를 잡아 옭아매려고, 호시탐탐(虎視耽耽) 기회만을 엿보던 바리새인들이 질문을 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됩니까? 안 바쳐야 됩니까?" 난처한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1) 성도들은 세상의 일도, 하나님의 일도, 모두 잘 감당해야 한다. 둘 다 중요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필경 잘못된 신앙이다.  

저들은 다시 또 물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交際)는 그 비중(比重)이 같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하나님만 잘 섬기면 인간관계는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하지 않고 인간 관계만 잘 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느 신학교의 표어에, ‘인간이 되라, 그리고 신자가 되라, 그 후에 목사가 되라’는 말이 있다. 신자이기에 앞서서 올바른 인간이 되는 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분명히 신자는 신자인데 영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산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사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이 인간 관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모순(矛盾)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면 다 되는 줄 아는데 왜 이런 윤리적인 것, 도덕적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무렇게나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외모에 있는가? 소유에 있는가? 아니면 학식이 많고, 가문이 좋은데 있는가? 세상살이에는 그런 것이 더러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임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있느냐에 있다. 얼마나 진실하고 깨끗하게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말한다. 믿음의 연륜이 쌓일수록 겸손해지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더 온유한 성품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시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불화하고, 원망 듣고, 미워하고, 욕먹으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인간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도 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과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성도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옛 말에도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형제가 화목하고 동거하는 곳에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133편) 이웃간에 범죄하는 일은 바로 이 화목을 깨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이웃간에 범죄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속건제를 드려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형제에게 고통을 주면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웃에 대해서 범죄한 다섯 가지의 예를 들고 있다. 이웃의 물건을 위탁 받고도 부인하는 것, 이웃의 담보물을 횡령하는 것, 이웃의 물건을 강탈하는 것, 이웃의 물건을 사취(詐取)하는 것, 이웃의 물건을 주워서 돌려주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죄를 속하기 위해서 손해를 입은 자에게 배상하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와서,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한다. 이웃을 사랑하면 남의 물건을 도적질 할 수 없다. 탐낼 수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전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므로, 깨달았거든 속히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먼저는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원금 뿐 아니라 거기에 1/5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속건제(贖愆祭)를 드림으로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 이웃에 대한 잘못을 뇌우치고 이전보다 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속건제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믿음에 온전히 서 있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웃에게 대해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웃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속건제의 규례를 주셨다. 이웃 간에 맺힌 관계는 속히 풀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회복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이웃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이웃을 슬프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항상 이웃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속건제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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