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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마가복음

듣고 깨달아야 한다

by ongdalsem 2020. 7. 25.

마가복음 714-23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사이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전통 즉, 유전을 신앙의 뼈대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유전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에서, 그들의 삶을 만들어가게 하는가를 지적하셨다.

  이 문제는 신앙의 큰 걸림돌이 편견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절대적 대상이 하나님이요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이나 가르침에 은연중 빠져들어 감으로, 실제적인 예수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무디어지고, 도리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 맞는 삶을 찾으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떡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유전에 따라 손을 씻지 아니하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시장에서 돌아오면 물을 뿌렸다. 또 그들은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자주 씻었다. 이러한 유전을 지키며 그것을 법으로 존중했던 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는 장로의 유전을 지키지 않고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습니까?”라고 비난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때 예수께서 이사야 29:13을 인용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여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라고 하셨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무엇을 부정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사람이 손만 씻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요, 손을 씻지 않았다고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부정한 것이다.(14,18절) 그리스도인들은 본래부터 죄로 인하여 부정하여 더러워진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고, 마침내 죄로부터 벗어나 정결의 은혜 속에 들어온 자들이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유일한 정결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듣고 깨닫지 못했다면, 아직도 그는 여전히 죄 가운데 부정하여 더러워진 상태로 있는 것이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문제, 손씻고 물 뿌리는 정결 예식 문제, 그 외 여러 가지 장로들의 유전과 율법의 보조 규례들을 행동으로만 잘 지키기만 하면, 마음과 그 정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정결 문제로 질문과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1-5절) 그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지적과 책망이 담긴 시정촉구에 대하여, 그 순간이라도 깨닫고 잘못을 고치고 수정하였더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큰 축복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옛날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듣기는 들었어도 깨닫지를 못했다. 바로 이 깨닫지 못함이 사람을 거룩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인 것이다.

  그러면 왜 깨닫지를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타성에 젖은 만성적인 외식으로 인한 부패타락 때문이다.(6절) 입술에만 있는 말씀 겉치레만 일삼는 종교적 의식들이 습관화되면, 좀처럼 고치기 어려운 타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외식적인 타성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다.

  알맹이와 정신과 마음을 잃어버린 종교적 의식의 껍데기는, 허울은 좋을지 모르나 그 속은 부패하고 썩어 냄새나는, 시체가 들어있는 회칠한 무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없는 예배, 마음이 없는 찬송, 마음이 떠나 있는 기도,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봉사와 충성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썩고 부패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준수하는 것보다, 말씀을 좀 응용한 유전과 전통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씀의 자리에 말씀을 적용하여 만든 전통과 규례를 올려놓으므로, 주객이 전도되는 심각한 과오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한다.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아시는 예수께서는, 본문 14절에서 무리를 향하여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고 하시고, 제자들에게도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하심으로 깨달음을 강조하셨다.

  만성적인 종교적 타성과 부패 타락의 아성을 깨고, 순수한 말씀 앞에 어린아이 같은 심령으로, 겸손히 고칠 것은 고치고 새롭게 해야 할 것은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듯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유전을 더욱 존중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음을 예수께서 지적하셨다.

  아무리 유전이 좋고 훌륭하다 해도 하나님의 가르침과 같지 않다면, 당연히 버릴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 로마 교황청이 개혁주의자들에게 도전을 받았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은 무시한 채 조상들의 유전에만 매어달려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다.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버리는구나!”

  모세의 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죽으리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서 아비나 어미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예물이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이었는데도 ‘고르반’(하나님께 드린 바 됨)하면 불효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전대로 살겠다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라고 하셨다. 무리를 다 불러 모아 놓고 이 말씀을 하셨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잘못된 신앙을 군중들이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리들이 무비판적으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군중을  모으시고 너희는 내 말을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듣고 바로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온 것이 더럽게 하는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로 들어가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손을 씻었다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유전에 매여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판하려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일이라면 그런 일에 매여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다. 마음에 있는 것이 입을 통해 나온다.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악한 생각이었다. 음란한 생각이나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생각이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 이 모든 악한 것들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스께서는,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운 탐욕이 가득하면서 손만 깨끗이 씻으면 다냐고 반문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는 편견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예수를 바로 믿기를 원한다면, 예수를 믿음으로 내일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올바로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라고 말씀한다.(시 49:20)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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