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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요한복음

보라 이 사람이로다

by ongdalsem 2021. 3. 19.

"요한복음 191-9

 

어느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하마트면 죽을 뻔했네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목숨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실로 납득이 가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인가, 제자들과 말씀하시던 중에,

이제 얼마 안 있어서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며,

자기가 옆에 있는 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하고 꾸짖으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8:35-36)

 

우리는 때로 진정 무엇이 유익한가를 생각지 않은 채 행동하는 일이 많다.

이삭의 두 아들 중 장남인 에서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서,

그의 가장 귀한 재산인 장자의 권한을 그의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25:32).

 

에서에게 있어서 진정 유익한 것은 팥죽 한 그릇이 아니라 장자의 명분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과 바꾸어버린 것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육체적인 배고픔이 문제였다. 그것만 해결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낚시 나갔던 사람이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자,

물고기를 사기 위해서 낚싯대를 팔아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가?

참으로 유익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다.

모름지기 이 지혜를 구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을 했다.

그리고는 군중 앞으로 데리고 나와서 예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하고 말했다.

 

빌라도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렸다는 소문도 들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나 뫃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나 자기 앞에 서 있는 예수는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로 보였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이 사람이 너희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죄 없는 사람이니 놓아주어야 하겠다!하는 말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군중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

그것은 양심의 소리를 듣기를 거부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만족을 추구한데 있었다.

군중의 마음을 얻어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죄한 사람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자기 딴에는 그것이 자기가 사는 길인 줄 생각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오히려 예수가 살고 자기는 죽게 되는 것을 몰랐다.

인기에 편승해서 진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수를 쓰든지 자기의 지위를 지키려다가 공의를 잃어버렸고,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게된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하게 된다.

그래 놓고도 자가는 무죄하다고 손을 씻었다.(27:24)

 

성공한 것 같지만 무가치한 삶이 있다.

이익을 위해서 명예를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인기 때문에 신념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일시적인 것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영국에 Wolsey라고 하는 추기경이 있었다.

그는 당시 영국을 다스리던 왕 헨리 8세를 위해 충성하며 영화를 누렸으나,

나중에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실각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왕께 충성한 절반의 열심만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했다면,

하나님은 내가 늙었을 때 나를 벌거벗겨 원수의 손에 던져버리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 세상의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은 세세토록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빌라도는 순간을 살려다가 영원히 죽은 것이다.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8:38).

 

예수께서는 무죄한 자이면서 채찍을 맞으셨다. 가시관을 쓰셨다. 십자가에 죽으셨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무가치한 죽음을 죽으셨다.

그러나 그가 찔림을 당한 것은 우리의 허물을 덮기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입은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53:5)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보존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할 뿐이다.

보존하기만 하는 것은 살고도 죽는 것이다. 잘 사용하는 것이 죽어도 사는 것이다.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재능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를 위해서만 살려 할 때 영원히 죽게 되는 것이요,

진리를 위해서 나를 죽이려 할 때,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가리키며 군중들에게 말했다. “이 무가치한 사람을 보라”.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는 침묵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빌라도 이 사람을 보라”.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왕권을 잡은 빌라도가 아니다.

권세를 누리는 제사장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바라보고,

그를 더욱 더 사랑하며 살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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