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1-11절
어느 집에서 잔치가 있게 되면 으레히 술과 고기, 그리고 국수를 준비한다. 그런데 잔칫집에 술과 고기가 떨어지고, 국수가 떨어지면 이미 그 잔치는 끝난 것이다. ‘있어봐야 더 나올 것도 없는데 그만 가세!’ 그리고는 왔던 손님들이 모두 떠나게 되는 것이다. 잔치에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오랫동안 함께 나누기 위해서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갈릴리 지방 가나 마을 어떤 집에서 결혼 잔치가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 집에 좋은 일이 있는 것을 축하해 주며,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었다. 예수께서도 그의 어머니와 함께 그 잔치에 참여하셨다. 그런데 한참 잔치가 진행 중인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혼인 잔치에 필수품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님을 청해놓고 음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주인에게는 부끄러움이 되는 것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대로 음식을 많이 장만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기왕에 대접하는 것,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장만해 놓았을지라도 언젠가는 떨어지는 날이 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주어진 한계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모두 놓고 떠나야 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시간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재능도 주셨다. 그러나 이것들도 떨어질 날이 있다. 그런 것들이 인생의 궁극적인 의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염려와 불안이 있는 것이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연회 장에게도 근심이 생겼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본문에 보면 이 문제가 예수께 알려졌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예수의 어머니가 그 사실을 예수께 전한 것이다. 그랬더니 연회 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예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하시게 됨으로 깨끗이 해결되었다.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왜 예수께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가? 본문 가운데서 우리는 문제 해결의 원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말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 하나님의 말씀은 계산하고 따져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임으로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 내 생각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내 방법과 다르다. 예수께서는 먼저 하인들에게 말씀하셨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7절). '포도도 없는데 물은 채워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며 불평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하인들은 예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다. 이해가 안되고 힘들지만 주인의 명령임으로 순종한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이제는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 하시는 것이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맹물을 떠다 주라니, 도대체 어쩔 작정인가?’ 하고 궁시렁 거렸을 법 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 하인들은 순종했다. 말씀대로 떠다 주었더니 그 물이 포도주로 변했는데, 이전보다 더 맛이 좋았다. 사람들이 계속 마시고 즐길 수가 있게 되었다. 더욱 즐거운 잔칫날이 된 것이다.
본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더 움켜쥐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놓으라고 말씀하신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저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이기려면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어려운데, 하나님은 엿새만 일하고 하루는 쉬라고 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가급적 어려운 것은 그만 두고 쉬운 길을 가라고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막8:34)고 말씀하셨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이것이 능력 받는 비결이다.
예수꼐서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요 1:9)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에 밝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믿는다는 것은 빛을 받았다는 말이다. 좌절과 낙심, 염려와 불안 가운데 사는 인생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맹물 맛이던 나를, 맛있고 향기 좋은 포도주로 바꾸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포도주 떨어진 잔치집 같이 침을한 우리의 가정에 활력을 불어넣으시려 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늘 불안하고, 가진 것이 있어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선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던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항상 감사하며, 그가 주시는 평안으로 만족을 느끼며, 선한 사업에 힘쓰게 하시는 것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누가 체험하는가? 본문 말씀에, 연회장은 좋은 포도주를 어디서 다시 가져왔는지 알지 못하나, ‘하인들은 알더라’(9절) 했다. 이치에 맞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순종한 하인들은 사건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살게 된다.
또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믿는 사람은, 시종 여일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살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준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꾀로 어리석은 일을 한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하던 일을 소홀히 한다. 마치 잔칫집에서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어놓다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낮은 포도주를 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어재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항상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없이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인심을 가리켜서 흔히, 염량세태(炎凉世態)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버리는 감탐고토(甘貪苦吐)니 한다. 환경 따라 인심이 변한다는 말이다. 내게 유익이 되면 가까이 하다가도, 별 유익이 없다 싶으면 버리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이쪽에 서 있다가도,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저쪽으로 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된다. 끝까지 믿음으로 신의를 지켜야 한다. 시종(始終) 일관(一貫)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 즐겁고 평안할 때 함께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에 함께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더 귀한 일이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포도주 떨어진 잔칫집에 예수께서 계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다. 계속 좋은 포도주가 공급되게 된 것이다. 끝까지 좋은 맛을 잃지 않게 된 것이다. 끝까지 좋은 맛을 내고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믿음은 능력이다. 믿음은 능력으로 역사 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신다. 믿고 따를 때에, 맹물 맛 같던 내가, 좋은 맛을 내고 살게 된다. 악취만 풍기고 살던 나의 삶이 좋은 향기를 풍기고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을 때 더 좋은 포도주의 향기가 잔치분위기를 흥겹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에 가정과 이웃에 활력을 주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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