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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요한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by ongdalsem 2020. 12. 1.

요한복음 11-5

 

빛은 참 중요하고 귀한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식물은 햇빛을 받아서 탄소 동화작용을 하고, 그래서 자라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동물들은 이 식물을 먹고 살아간다. 빛은 생명을 준다. 어두운 곳을 밝게 한다. 추운 곳을 따뜻하게한다. 부패하는 것을 막아 준다. 우리는 때로, 빛이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본보기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빛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보일 때 빛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어느 날 나지막한 산에 오르셔서 바위에 앉으셨다. 제자들이 함께 따라와서 예수님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한참 말씀하시고 나서, 결론적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시면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으로 말씀을 맺으셨다. (5:1-16) 제자들이본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나아가야 할 목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본문 말씀 가운데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4)고 하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일 먼저 빛이 있으라”(1:3)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은 햇빛, 달빛, 별빛, 불빛 등이다. 그런가 하면, 빛이 없으면 생명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혀 태양 빛이 없는 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1986년에 남부 루마니아(Romania)지방, 흑해(Black Sea) 연안에서 한 건축 기술자가 지반(地盤) 조사를 하다가 지하 80피트 아래에 있는 한 동굴을 발견했다. 몇 명의 동굴 탐험가들이 동굴을 조사하기 위해서 동굴 밑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거미, 전갈, 거머리, 노래기 등, 수많은 종류의 무척추(無脊椎) 동물들이 살고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태양 광선과 광합성(光合成)을 통한 에너지의 공급이 없이도 생명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최초의 증거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동굴 안에 있는 물에 떠 있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박테리아가 태양 광선 대신에 공기 안에 있는 황화수소(黃化水素)를 에너지로 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햇빛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Discover 19971월호 59페이지)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빛은 분명 태양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법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생명의 존재 질서와 존재 근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있으므로 해서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고, 이 빛이 있으므로 해서 우주 만물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본문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빛이요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예수의 생명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빛을 소유한 자요,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빛이 된다는 것은 모범이 되는 것을 뜻하기도 지만, 목표가 되는 것을 말뜻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인생의 목표요, 인생의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가 아니면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도 없으며, 바로 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7:19-24). 생명 되시고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의 주인을 삼을 때에 라야 내가 바로 보고 바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의 빛이 세상 어두움에 비취었으나 어두움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본문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하는 말은 외부에서 안을 향하여 비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에 들어와서 비취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바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악과 어두움으로 싸여있는 이 세상에 들어오신 사건, Incarnation(聖肉身) 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불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이 선포되고 있으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손에 보화를 쥐고도 그것이 보화인줄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도가 낳은 유명한 시인 타골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시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아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땅 한 가운데로는 경치가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었다. 타골은 작은 나룻배를 강물 위에 띄워 놓고 몇일 밤낮을 배 안에서 보내기를 좋아했다. 어느 달 밝은 밤이었다. 타골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강물에 배를 띄워 놓고, 그 안에서 촛불을 켜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한 크로체라고 하는 사람의 논문이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한참 어려운 논문을 읽던 타골은 책읽기를 그치고 잠을 자려고 켜 놓았던 촛불을 껐다. 그 순간 타골은 지금까지 열심히 책을 보며 찿으려 했던 그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타골이 촛불을 끈 순간 창문으로 들어와서 온 배 안을 비취는 밝은 달빛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뱃전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요한 밤에 바다 위에 출렁이는 달빛은 너무 아름다웠다. 타골은 이 경험을 글로 적어 남.

 

'아름다움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논한 책에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내가 켜 놓은 작은 촛불이 그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있었다. 촛불의 연약함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참 빛을 보기 원한다면 내가 스스로 빛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꺼 버려야 한다. 내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함으로 참 의를 행치 못하게 된다. 내가 대접받을 만한 무엇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함으로, 겸손하게 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무슨 남보다 잘난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한다. 내 조그만 자존심이, 내 적은 지식이 촛불이 되어서 달빛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어두움에 처해 있으면서 어두움 인줄을 모르는 것이다. 눈을 뜬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한다. 바로 깨달아야 바로 행하게 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면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5:8-9)”고 했다. 참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으로, 밝은 깨달음으로, 그리고 뜨거운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계신다.  안에 생명 되시고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다. 그 빛은 세상에 비추어 져야 한다. 착한 행실로 비추어져야 한다. 의로운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진실한 모습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래서 세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바른 목표를 세우며 함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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