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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시와 수필10

새(鳥) 무덤 참새보다 몸통 길이는 조금 짧고 몸집은 조금 뚱뚱하다. 뚱뚱하다기보다는 똥똥하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몸집인데 목에는 노란 바탕에 약간 푸른빛을 띤 보드라운 깃털을 두르고 있었다. 고것이 내 눈에 보인 것은 종일 불볕을 뿜어내던 해가 열기를 거두고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옆집과 사이를 나누고 있는 화단 가장자리에 두 장쯤 높이로 쌓아놓은 벽돌담 위에 새는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있었다. 담 위에 새 한 마리 앉아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난생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왠지 관심이 갔다. 내가 가까이 가는데도 새는 고개를 곧추 세운 채 물두멍 같이 까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꿈쩍 않고 앉아있었다. 한 여름이라 더위를 먹었나? 주변에는 새가 쪼아 먹을 만한 물 한.. 2020. 7. 12.
밟지 마라 떨어진 꽃이라고 낙화(洛花) 밟지 마라 떨어진 꽃이라고 너도 떨어질 날 있을 것이다 매어 달린 꽃도 예쁘고 떨어진 꽃도 아름답다 꽃이니까 시들지 않는 꽃이 있으랴 떨어지지 않는 꽃이 있으랴 나도 그렇다 너와 나 때문만 아니다 공원이 아름다운 건 떨어진 꽃 때문이다 - 옹달샘 - 2020. 7. 9.
일생(一生) 황모黃毛 무심無心 먹물로 감추고 닳고 꺽이고 버려져 글 되고 그림 되고 노래 되었다 붓筆 -옹달샘- *좋은 붓을 가리켜 당황모(唐黃毛) 무심필(無心筆)이라 한다. 중국에서 나는 족제비의 꼬리 털로 만든 붓이다. 아무리 좋은 붓이라도 닳고 꺾이고 버려진다. 제 몫을 다하느라 먹물을 뒤집어 쓰고 닳고 꺾이고 버려지지만, 붓은 글로 그림으로 노래로 남는다. 내가 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붓이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2020. 6. 30.
연 못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농사일을 거들곤 했다. 대개 천수답(天水畓)이 많아서 여름에 가뭄이 들어 비가 제때에 내리지 않으면, 벼논에 물을 끌어대느라고 마을의 보(洑)치는 일도 도와야 했다. (평소에 물이 좀 고여 있는 개울을 깊게 파서 물을 끌어대는 것을 보를 친다고 말한다.) 우리 논(畓) 옆에는 다행히 연못이 두 개가 있어서, 가뭄이 들어도 논에 물 대는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벼가 한창 푸르게 자랄 즈음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약 오리(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논으로 가서, 자전거를 연못가에 세워두고 논배미마다 물이 제대로 채워졌는지 물고를 검하곤 했는데, 그러던 중에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20.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