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골방 1/민수기

변하지 말아야 한다

by ongdalsem 2020. 10. 1.

민수기 26장 63-65절

 

어느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요즘 우리 사이가 좀 멀어진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아마 멀어졌으면 당신이 멀어졌겠지, 나는 늘 이 운전석에서 조금도 멀리 떨어져 본적이 없으니까!’

 

변하기는 내가 변했는데 상대방이 변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별로 없다.

어떤 철학자는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알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것을 귀하게 여긴다.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사람들은 어느 후보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과연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약속대로 지킬 것인가 하는 것도 관심꺼리다.

어느나라에서건 선거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약속은 많이 해 놓고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 하면 신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기가 일수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인은 마음이 변한 것이다.

 

총각과 처녀가 연애를 한다. 곰보도 보조개로 보일만큼 서로 사랑한다. 그래서 온갖 약속을 다 한다.

평생 가도 아내 속 썩이지 않을 남편일 것 같다. 평생토록 예쁘기만 한 아내일 것 같다.

말로 서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한다. 결혼을 한다. 주례자와 많은 증인 앞에서 서약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남편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야속해 한다. 아내가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불평한다.

결혼하기 전과 달라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변한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처음 예수를 믿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날마다 감사가 넘쳤다.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조금도 아까운 마음이 없었다.

열심히 봉사했다. 적극적으로 성도의 교제에 힘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쁨을 잃었다. 매일 매일의 삶에 감사가 없다.

봉사하려는 마음이 없어졌다. 성도의 교제를 등한히 하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변한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에베소 교회는 여러 모로 칭찬받는 교회였다. 그런데 그중에도 한가지 책망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 2:4)는 것이다.

어디서 잘못 되었는가를 찾아,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도로 찾으라’(계 2:5)고 말씀한다.

가정생활에서, 이웃 간에, 교회 생활에서, 혹시 처음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사라젔던 감사와 찬송이 되 살아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 마음도 변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세상은 믿을만 한 것이 못된다. 마음 하나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변함없는 마음을 가저야 한다.

 

하나님은 ‘심지(心志)가 견고(堅固)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겠다’(사 26:3)고 약속하셨다.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한 번 먹은 마음을 변치않고 끝까지 견고히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변함없는 사랑과, 변함없는 충성과,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실망할 일 투성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앞 평지에 진을 치고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計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인구조사를 했다.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 한 자를 모두 계수해 보니 601,730명 이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지 2년 2개월 1일 되든 날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시내산 앞 광야에 모여 있는 백성들을 계수하게 하셨다.

그때, 모세와 아론이 계수한,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의 수는 603,550명 이었다(민 2:32).

 

숫자적으로는 별로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이 계수했던 그 사람들 중에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 밖에는 지금 남아있는 사람이 없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민 26:65).

603,550명 중에서 두 사람만 남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생하고 울부짖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저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지방에 이르게 할 것이다’(출 3:8).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약속은 맛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어 버리고,

갈렙과 여호수아만 남았다. 하나님이 왜 이 두 사람만 남겨 놓으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 진치고 있을 때에 모세는 각 지파 중에서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보냈다.

그들이 가서 보았더니 과연 아름다운 땅이었다.

포도 한 송이가 두 사람이 막대기로 꿰어서 메어야 할 정도로 컸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것은 모두가 인정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열 사람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 땅 거민은 강합니다. 성읍은 견고합니다. 거기 있는 아낙 자손은 신장(身長)이 장대(壯大)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마치 메뚜기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민 13:23-33).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도 보기는 같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환경만을 보지 않고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다.

그 땅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그래서 갈렙은 말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민 13:30)

 

그리고 오히려, 열 사람의 부정적인 보고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9).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문제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3)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들의 것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군중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

믿지 못하는 군중 603,548명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어떠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해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풍족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 이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를 모세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가셨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바울은 말했다.(히 12:6).

 

때로 환경이 나를 어렵게 한다. 고난이 있다. 때

로 아내가 나를 화나게 한다.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웃이 고통을 준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3:5-6) 했다.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변함없이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결단코 헛되지 않는다.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반드시 상급이 있다.

이 믿음으로 이웃을 섬기고 살아야 한다.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어서 반드시 거둘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백성을 계수하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합당한대로 기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민 26:53). 때가 된 것이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기업이 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고,

그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삼상 2:30)

 

비록 내가 지금, 믿을 수 없는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을지라도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다.

상대방이 변한다고 나도 변하면, 회복의 길이 없다.

남편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말아야 하며, 아내는 변해도 나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

둘 다 변하면 회복할 길이 없다.

친구는 변해도 나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잃었던 우정을 다시 찾을 수 있다.

 

‘믿음(Faith)’이라는 말은 진실하다는 의미가 있다. 충성되다는 의미가 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충성된 것을 말한다. 변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어찌 순종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진실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충성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 앞에 진실함이 없고, 충성됨이 없다면, 어찌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603,548명이 모두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원망했어도,

남은 두 사람,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처음 믿음을 변함없이 지킴으로,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동족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던 것처럼,

확실한 믿음,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옹달샘)

'골방 1 > 민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소원  (0) 2020.10.13
비느하스의 질투  (0) 2020.09.29
눈 뜬 자가 하는 말(語)  (0) 2020.08.25
행동이 따라야 한다.  (0) 2020.08.21
당나귀가 하는 말  (0)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