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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로 마 서

생명과 평안

by ongdalsem 2020. 8. 14.

로마서 8장 1-11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철학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대체로 세 가지로 집약이 되는데, 그 첫째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이다. 인간은 육체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정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육체에 매여있는 하나의 기능일 뿐이요, 육체가 쇠하면 결국 정신세계도 없어지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래서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를 것이 없고,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는 옷을 입고 다니고,다른 하나는 털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견해는 이원론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 몸과 영혼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육은 더러운 것이요, 정신, 즉 혼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육체적인 본능을 억제하고 죽이기 위해 입산수도(入山修道)를 하며, 몸을 학대하고 자신을 정죄한다.

 

  세 번째 견해는 기독교적 인간론이다. 성경은 인간을 물질과 정신으로 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종합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말씀한다. 육체만으로도 인간이 아니며, 정신만으로도 인간이 아니다. 육체는 더럽고 정신은 고상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과, 죄에 물들어 타락한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주셨는데, 죄에 물들고 타락해서, 영적인 사람이 육적인 사람, 즉 육에 속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인간관은 육체도 중요하게 여기고 정신도 중요하게 여긴다. 육체적 본능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본능을 가지고 죄의 길로 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경은 ‘육체의 일’ 이라고 말씀한다. 육신을 좇는 사람은 육체의 일을 이루고,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일을 이룬다고 본문에서 말씀한다.(5절) 

 

  육신을 좇는다는 것은 육체적 본능을 따라 산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산다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존심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함과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세우는 일, 야망을 채우는 일은 한계가 없다. 그래서 욕망을 따라 사는 삶에는 만족이 없고, 염려와 근심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한다.(6절) 육신의 생각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7절) 그래서 육신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8절)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서 다소 편함을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온전한 평안은 누릴 수가 없다.

 

  참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영에 속한 사람은 영을 좇는 사람이다. 사람은 그 생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모습이 달라진다. 생각 심어 행동 낳고, 행동 심어 습관 낳고, 습관 심어 운명 낳는다는 말이 있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일을 하게 된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자기욕망을 따라 살지 않는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영에 속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 명예, 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도덕과 양심, 진리와 사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살기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그래서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함과 평안을 누리고 살게된다.

 

  육에 속해 사는 사람이나, 영에 속해 사는 사람이나, 처음 시작은 모두 비슷하다. 사는 모습도 비슷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그 결말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 사람은 생명의 길로 가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사망의 길로 가고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신령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다른 한 사람은 점점 더 세속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더듬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부터라도 나의 삶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 나는 과연 육신의 지배를 따라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영의 지배를 따라 사는 사람인가? 성경은 말씀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절)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요, 사상이요 정신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어떤 이들은 성령은 능력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성령을 점치는 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통상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미래의 일을 훤히 내다보는 신통력이 있는 사람쯤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참으로 영적인 사람은 신통력이 없어도, 능력을 행할 줄 몰라도, 그 삶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사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일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성경이 말씀한다.(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온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아서,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우선권을 두고 삶으로 말미암아, 상황과 관계없이 항상 참 생명과 참 평안을 누리고 살게 되는 특권을 주신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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