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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사도행전

칭찬 받은 사람들

by ongdalsem 2020. 7. 29.

사도행전 2장 37-47절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세상에 계실 동안에, 제자들은 굉장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부푼 꿈이 있었다. 로마의 학정으로 인해 고통 받던 삶에서 곧 벗어나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꿈에 부풀어 있던 제자들은 이제 너무도 엄청난 사건들을 연거푸 경험하게 되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형틀에서 피를 쏟고 죽어가신 예수를 생각하며 비통해 하기도 했고, 장사한지 사흘 뒤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의 예수를 만나서 다시 흥분했는가 하면, 다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昇天)해 버리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허탈해 하기도 했을 것이다.  

참으로 정신 차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중에도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생각하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일이 언제 이루어지려는가 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순절이 되었다. 역시 제자들은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의 혀 같은 것이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했고,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서 각각 다른 방언(邦言)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모여 있는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갈릴리 지방 시골 사람들인데, 그들이 전혀 배우지도 않은 이방(異邦) 언어(言語)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것이다. 본인들은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간에,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당시에 거기에는 여러 곳으로부터 여러 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모인 사람들이 모두 알아듣게 하려면 10여개국의 언어가 필요했다.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서,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하는 사람도 놀라고 듣는 사람도 놀랐을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놀랐을 뿐 아니라, 더러는 이 사실을 의심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는 말로, ‘저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했다.(행2:12-13) 

성령의 역사는 인간 이해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을 힘입을 때에, 보통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하게 된다. 삶의 철학이 바뀌고, 삶의 수단이 바뀌고, 삶의 목적이 바뀐다. 남이 가지지 못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세상의 풍요함을 누리며 부족함을 모르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오지(奧地)에 선교사로 나가서 죽을 고생을 마다 않고, 순교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령의 역사다. 성령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성령의 은혜로 권능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행 1:8) 누구를 위해서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를 높이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 사명(使命)이다. 결코 다른 목적을 위하여 성령을 구할 것이 아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에 가서 전도할 때, 사람들에게 안수함으로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마침 그 곳에 시몬(Simon)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었다. 마술에 있어서는 아마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시몬이 어느 날 빌립(Phillip)의 전도를 받고 빌립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이미 세례도 받았다. 예루살렘으로부터 그곳에 온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에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시몬은 조용한 때에, 돈 보따리를 들고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가서, 그 권능을 나누어 달라고 말했다.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하여 주소서”(행 8:19).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시몬을 향해 호되게 꾸짖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이 바르지 못한 것을 꾸짖어, 그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기도하라고 말했다.(행 8:22) 

본문 말씀 가운데서 몇 가지 주목(注目)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성령의 역사가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났느냐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모여 기도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임한다. 바울은 말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히 10:25) 하나님은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다음으로 본문의 말씀에 보면, 모인 무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우리가 어찌할꼬?’(What should we do?)하고 사도들에게 물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찔림을 받는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 하신다. ‘찔림을 받는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잘못에 대한 강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나에게 하시는 것으로 듣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서는 내게 유익이 없다. 무슨 말씀이든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내가 찔림을 받고, 내가 회개할 때에 성령이 내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또 한가지, 성령 충만의 은혜를 입은 제자들의 모습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으며 기도에 힘쓰고, 교제하고 나누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행 2:42-47)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같이 달게 느껴 질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정금(正金)보다 더 사모(思慕)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다’(시 19:10)고 고백(告白)했다. 말씀을 듣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신자(信者)의 호흡(呼吸)이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 없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다.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다. 기도를 통해  더욱 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은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힘썼다. 교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여야 한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절) 그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누가 더 잘해 오고, 누가 좀 못해 오는가는 상관이 없다. 누가 더 많이 준비 했고, 누가 좀 덜 준비 했는가도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순전한 마음이다.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다. 최선을 다해서 나누고, 믿음 안에서 한 가족 된 것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고 말했다. 베푸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거둘 날이 있다는 것이다. 베푸는 마음이 없이는 참다운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들 간에 친밀한 교제가 있고, 아름다운 나눔이 있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거기에 은혜로 함께 하신다. 다윗은 그 모습을 노래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성도 간에 서로 베풀고 나누며, 넘치는 사랑으로 교제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성령은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하게 하신다. 찬양은 교회 찬양대에게만 주신 특권이 아니다. 성경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 했다. 찬양은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의무다. 성도의 입술에서 찬양의 소리가 끊어지면, 이미 심령이 병든 것이다. 찬양한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 노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고,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할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기쁨의 표현이다. 

때로, 눈앞에 당한 어려움 때문에 평안을 잃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때가 있다. 비록 그럴 때에라도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같혀, 착고(着錮)에 묶여 있을 때에도 찬송했다. 그런 가운데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 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제자들은 사람들에게서도 칭송을 받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바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하면서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하지 못하는 것은, 실상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못한 증거일 뿐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한때 흉년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그랄 지방에 머물어 살았다. 이미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불레셋 사람들과 충돌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옮겨 가면서 평안한 삶을 살았다. 이것을 지켜보던 불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화친을 청하면서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8-29)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복 받은 자로다’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증인의 삶이다. 성령의 은혜로 권능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마련이다. 비록 멀리 선교지를 향해 떠나가지 않더라도,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있든지, 바로 그 시간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성령 충만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함으로 사람들에게서도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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