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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사도행전

기다리라

by ongdalsem 2020. 7. 29.

사도행전 1장 1-11절

  기독교인은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복음의 정의를 분명히 할 때, 올바른 신앙 교육을 할 수 있게 되고, 올바른 선교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복음은 글자대로 해석하면 복된 소식이다. 그러니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복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평안해지고, 질병이 떠나가고, 잘 살게 되는 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자기중심적 사고(思考)의 결과다. 

  인간의 노력으로 일시적으로 자유함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복음일 수는 없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오직 하나님이 그의 선하신 뜻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자유케 하시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사람은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위탁(委託)된 자로 쓰여지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순한 지식이나 철학이나, 어떤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창차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은 이미 받았으나,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강림하실 그 때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복음 안에서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이미 얻은 구원으로 자유함을 누리면서, 장차 온전하게 될 구원을 바라보는 삶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그 약속의 때를 향한 기디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의 삶은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요, 이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따라서 범죄 한 자를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예비하시고, 죄를 뇌우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 살 길을 예비해주시고, 그리로 오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 하셨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이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시고, 그 보증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그를 따르던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과, 그에게 소망을 두고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소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허망할 데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그 동안에 가졌던 소망을 한갖 헛된 꿈이었던 것으로 치부하고, 실망과 좌절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움이 제자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실의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육신의 모습은 떠나 가셨지만, 그 주님은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지금도 믿는 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것이다. 성경 본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절)는 말씀이 있다. 약속은 약속한 자가 정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내 마음에 맞추려 하고, 나의 시간표에 맞추려 할 때 조급해진다. 조금 기다려 보다가 안되면 마음을 바꾼다. 

  약속은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면 내것이 될 수 없다. 약속도 없는데 쓸데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헛된 믿음이다. 약속은 분명히 주어졌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3:5,8) 하나님의 은혜는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안나’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결혼한 후 7년만에 과부가 되었는데, 그의 마음속에 메시야를 만날 소망이 있었다. 그는 과부가 된 후로 팔십 사년 동안을 성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섬기다가, 아기 예수가 그 어머니 마리아의 품에 안겨서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눅 2:36-38)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다릴 수 있게 한다. 

  기다림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능동적 기다림이요, 다른 하나는 수동적 기다림이다. 하나는 꼭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져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사람과 수동적이며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그 삶의 방법에 아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적극적이요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의 것이다. 천국은 침노(侵擄)하는 자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마 11:12) 

  천국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자의 것이며, 주어진 삶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의 것이다. 본문 말씀에서, 기다리는 자의 두가지 필요한 자세(Attitude)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4절).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난 뒤에 예루살렘에는 예수를 따르던 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이다. 고향 마을 갈릴리로 돌아가면 오히려 평안할 것이다. 그런데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힘들다고, 어려움이 있다고,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한 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었으면,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떠나지 말고, 성전을 떠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약속을 믿고 견디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종종 참지 못하고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말씀에서 떠나고, 믿음에서 떠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윗이 노래한 것처럼,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할’것이다.(시 71:14)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 11절에,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하는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잠시 넋이 빠진 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잊었다.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절).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려나 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일까 계산이나 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요, 성도들은 매일 매일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데 예수께서 언제 재림하시든 무슨 상관인가?

  오늘도 '믿음에서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중에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오늘보다 더 복된 내일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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