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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출애급기

마라에서 엘림으로

by ongdalsem 2020. 7. 27.

출애굽기 15장 22-27절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이 수르 광야에 들어섰다. 모두 목이 말라 물울 찾는데 마실 물이 없었다. 삼일 만에 작은 물샘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샘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쓴 물이란 뜻이다. 

  마라는 고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나의 하나님은 왕)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여쁜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살다 좀 힘드니까, 자기 힘을 의지하여 살려고 고향을 등지고 모압 지방으로 떠났다. 얼마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들도 일찍 죽고, 과부가 된 나오미는 사망의 고통과, 가난의 시련을 겪은 후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나오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모압이 아니라 베들레헴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반갑게 말했다. '아니 자네 나오미 아닌가? 반갑네, 이게 얼마만인가?'그 때 나오미가 말했다. '여러분 저를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 라고 불러 주세요. 제게는 이제 아무 낙이 없습니다. 남은 건 고통뿐입니다.'(룻기 1장 20절)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물샘에서 물을 한웅큼 떠 마시려고 입을 대어보니 물이 써서 도무지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홍해를 건넌 감격으로 기쁨의 환성을 지른지 사흘 만에, 그들은 원망의 소리를 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불과 사흘 전 그토록 큰 목소리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던 백성치고는, 원망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은혜 받고 축복 받았다고 눈물 흘리며 감사 찬송을 했는데,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원망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이웃과의 관계도 나빠지게 된다.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에는 기도도 찬송도 나오지 않는다. 원망은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지게 만든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원망하는 버릇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아무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원망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급하게 원망부터 하는 버릇이 있다. 원망하는 것 보다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인데,(24절) 그들이 원망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건망증이다. 그들은 사흘 전에 있었던 엄청나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쓴 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 받은바 사랑과 은혜를 모조리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어제 받은 그 사랑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모두가 다 건망증 환자들이다.  

  둘째는 조급증이다. 조급증이란 인내하지 못하고 서둘고 덤비는 방정스러움을 말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 일을, 서둘고 덤비기 때문에 그르친다. 잠언 14장 29절에,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들이 조급하게 굴지 않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믿으면서 계속 행군했더라면,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놀라운 사랑을 곧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하나님, 어찌해야 합니까? 저로서는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눈울 떠 옆을 보라, 거기 있는 나무 가지를 물에 던지라.' 모세가 눈을 떠 보니 과연 거기 나뭇가지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그 나뭇가지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라의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다. 목마른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고 불평과 불만을 거두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렀더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모세가 물위에 던진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나무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평과 불만의 쓴 물을 달게 하는 마라의 나무 가지다. 

  지금 세계는 인생의 갈증을 느낀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이 폭발하고 있다. 살인, 방화, 인신매매, 마약 등, 온갖 강력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치료책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 가지 즉, 복음이다. 메마른 영혼 속에 생명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십자가 복음뿐이다. 십자가 복음이 쓴 물을 단 물로 바꾼다. 

  고난과 고통, 처절한 죽음의 장소에서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자는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란은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했다. 

  시험 당하면 기도하고 어려울 때 기도할 것이다. 쓴 물을 만났을 때 그 때는 우리가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볼 때다. 쓴 물을 만났을 때 오히려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그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환란을 격는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잡지 못한 베드로 곁에, 얍복강 나룻터에 모두 다 건네 놓고 외로이 부르짖는 야곱의 곁에, 하님이 계셨다.  

  오늘도 하나님은 철저히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는 연약한 자의 곁에 계신다. 나의 곤고한 심경에, 사업에, 가정에, 자녀에, 건강에, 환란의 쓴 물이 올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안에서 평안을 얻어야 한다. 마라에서 주저앉아 원망허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하나님이 예비히신 엘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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