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골방 2/마태복음

아버지의 뜻대로

by ongdalsem 2021. 3. 24.

"마마태복음 26장 36-46절"

 

  예수께서는 서른세 살에 돌아가셨다. 한참 피끓는 청년시절이었다. 부모를 도와드려야 하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할 나이였다. 사회적으로도 한참 일할 나이였다. 그런 그가 가장 흉악한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려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그 주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속을 모르는 삶들은 아름대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참 아깝다!”, "좀 약게 살지 못하고,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가?” , 많은 말들을 했을 것이다.그러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도, 서른세 살 한참 젊은 나이에 십자가 위에서 처참한 최후를 마친 그 예수를 가리켜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는 진자가 아니라 이긴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살아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도 지는 삶이 있고, 죽어도 이기는 삶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삶은 이기는 것 같아도 지는 삶이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는 삶은 지는 것 같아도 이기는 삶이다.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이기는 삶이다. 나에게 날마다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에게 오늘도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이길 힘을 어디서 얻으셨는가? 한참 젊은 나이에, 뜻을 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예수께서도 우리와 같은 육정을 가지고 계셨으므로 그것이 괴로우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 길, '십자가를 지는 길' 밖에 딴 길은 없을까? 고민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내려오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정말 이 길밖에는 없습니까?” “꼭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예수께서 얼마나 괴로우셨는지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신 것을 보아서 짐작할 수가 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잠자지 말고, 좀 기도해 주려므나!”(26:38).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 예수께서 한참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 보니 모두 잠자고 있었다. 예수님의 타는 속을 제자들이 어찌 짐작이나마 할 수가 있었겠는가? 내 속은 나 밖에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예수께서는 속으로 좀 섭섭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26:40). 옛말에, '다른 사람 죽는 거, 내 고뿔만큼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게 세상인심이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무엇을 믿고, 거기에 마음을 주고 산다는 것인가? 쓸데없는 일이다.

 

  바울은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믿기 전에는 병이 들면 감추려 한다. 믿은 후로는 오히려 믿음의 형제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 평안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소망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시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결, 그것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내 뜻보다 높고, 아버지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나은 것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사무엘하 165절 이하에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서 약세에 몰려 바후림이라는 곳에서 피난하고 있을 때, 사울 집안사람인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욕을 하고 나왔다. 다윗의 심복 중 한 사람인 아비새가 분한 마음을 품고 다윗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어찌 저런 개 같은 놈이 감히 왕을 저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당장 가서 저놈을 요절 내 버리고 말겠습니다. "다윗은 그런 아비새를 말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저놈이 그러는 것이야 당연하지!”(삼상 16:11) 그리고 또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상 16:12) 자신의 생각과 인간적인 복수심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긴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자기의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두 말없이 떠나서 복의 근원이 되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믿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 세력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길이다. 예수께서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26:39, 42).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으신 다음에, 평안을 찾았다. 그래서 이제는 졸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마음 놓고 자고 쉬라!”(45). 하나님의 뜻 안에 나를 던져 넣을 때 평안이 온다. 지금 당장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 길이 거기에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옹달샘)

'골방 2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이 있나니  (0) 2021.04.20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0) 2021.04.14
떡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0) 2020.11.24
바꿔야 산다  (0) 2020.11.12
죄인을 위한 복음  (0) 20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