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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시와 수필

새(鳥) 무덤

by ongdalsem 2020. 7. 12.

  참새보다 몸통 길이는 조금 짧고 몸집은 조금 뚱뚱하다. 뚱뚱하다기보다는 똥똥하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몸집인데 목에는 노란 바탕에 약간 푸른빛을 띤 보드라운 깃털을 두르고 있었다. 고것이 내 눈에 보인 것은 종일 불볕을 뿜어내던 해가 열기를 거두고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옆집과 사이를 나누고 있는 화단 가장자리에 두 장쯤 높이로 쌓아놓은 벽돌담 위에 새는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있었다. 담 위에 새 한 마리 앉아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난생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왠지 관심이 갔다. 내가 가까이 가는데도 새는 고개를 곧추 세운 채 물두멍 같이 까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꿈쩍 않고 앉아있었다.     

  한 여름이라 더위를 먹었나? 주변에는 새가 쪼아 먹을 만한 물 한 방울도 없다. 집으로 들어가 작은 접시에 물을 담아가지고 나왔다. 새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물 접시를 발 앞에 놓아주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세상에 이런! 가지고 온 성의를 생각해서 먹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접시를 들어 새 머리 위에다 부어주었다.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까만 눈망울을 한번 굴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물을 털어냈다.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미동도 않고 앉아있다.     

  집 주위에 있는 화단에는 새들이 수시로 날아와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지렁이라도 한 마리 있는 것을 보면 잽싸게 쪼아서 나누어 먹는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보려고 창문을 열려하면 어떻게 아는지, 미처 문을 열기도 전에 모두 집 앞에 있는 개 목련 나무 위로 날아올라가 숨어버린다. 그런데 이놈은 내가 가까이 가는데도 몇 걸음 옆으로 옮길 뿐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일까? 자세히 보니 조그만 부리 주변에 혹 같은 것이 붙어 있다. 뭘 잘못 쪼아서 좋지 않은 것에 감염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리 주위가 그렇게 부풀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저도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정도는 분별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하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도 때로 가릴 것을 가리지 않고 먹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지 않는가. 아무튼 풀숲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가서 두 손으로 감싸 들었다. 전에도 몇 번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보통은 손으로 감싸려 하면 저를 해코지하는 줄로 여기는지 날개를 푸들거리고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것이 손바닥에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이놈은 내가 그렇게 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주 편하게 자기 몸을 내 손에 맡기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만 빛내고 있었다. 울지도 않고 도망가려는 시도를 하지도 않았다. 깃털은 풀솜같이 보드랍고 따뜻했다.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걷지를 못하거나 날개를 다쳐서 날지 못하는 것 같아 옆에 있는 키 작은 화초 소나무 위에 내려놓았다. 정원사가 손질을 잘해놓아서 나무 윗부분이 가지런히 평면으로 잘려 있어 새가 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는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가 폴짝폴짝 뛰어 옆으로 조금씩 옮겨 가더니 날개를 활짝 펴고 풀쩍 날아서 화단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풀숲으로 들어가 쉬려는 것 같았다. 새는 조금씩 걸음을 옮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바닥에 깔려 자라고 있는 풀줄기에 다리가 걸려서 쉽게 이동을 하지 못했다. 다가가서 조금 더 걷기 쉬운 곳으로 옮겨주었다. 새는 그 자리에서 조금 쉬는듯하다가 풀숲과 옆집 뜰 축대가 맞닿은 곳으로 기어가서, 머리를 풀숲에 들이밀어 몸을 반쯤 감추고 다리를 구부려 앉아 쉬고 있었다. 저렇게 좀 쉬고 나면 다시 기운을 차릴 것이라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궁금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새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새의 자세가 한 시간 전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조그만 막대기로 새를 건드려 보았더니 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아! 어쩌다가 내가 이 꼴을 보게 되었는가? 혼자 거기 그러고 있으면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살아있을 때 함께 몰려다니며 재잘대고 놀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왜 하필 나냐? 그 집에 혼자 사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혹 새가 할아버지를 따라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감당할 수밖에. 화단 한가운데를 부삽으로 팠다. 새 한 마리 누울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새가 죽은 줄은 어찌 그리 빨리 알았는지 죽은 새의 배에는 좁쌀만 한 검은 개미 몇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막대기로 그것들을 털어내고 새를 묻은 다음, 풀줄기를 한 줌 뜯어 위에다 덮어주었다. 세상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鳥) 무덤이다. 아마도 그날 그 이름 모를 새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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