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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창세기

선택과 결단

by ongdalsem 2020. 7. 26.

창세기 13장 1-13절

  사람은 누구나 싫던 좋던 간에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무슨 옷을 입을까?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누구를 만날까? 학교는 어디를 갈까? 전공은 무엇을 할까?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까? 어디에 거처를 정하고 살까? 무슨 직업을 택할까? 등등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선택은 자유지만, 일단 선택한 후에는 그 결과는 일평생 자기의 책임아래에 있게 된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한 것이고, 함부로 아무것이나 선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택은 결단을 동반한다. 하나를 택했으면 다른 것은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어느 날 하란에 머물고 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아브람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든 땅 하란을 버리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땅을 향해서 정처없이 떠날 것인가?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이다. 내 지식 내 능력 다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사숙고한 끝에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조카 ‘롯’을 데리고 함께 이민 길에 올랐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도착한 곳이 가나안 땅이었다. 아브람이 이때까지 오게 된 것은 결코 순탄하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선택하고 가나안에 왔지만, 그의 앞길에는 고난이 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굶주림이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랬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창12:10-20) 선택은 잘 했지만 결단이 함께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을 올바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선택한 것을 굳게 잡고 견고히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길을 바로 가기 위한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날마다 이 결단을 새롭게 다짐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다.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에게 복을 주셨다. 거기서 아브람과 롯은 소유가 넉넉하게 되었다.(6절)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롯의 목자들과 아브람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그들의 소유가 많기 때문이었다. 

  소유물이 넉넉한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많은 소유물이 화평을 깨는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결단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어느 날, 아브람은 조카 롯을 불러서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서로 좀 떨어져서 싸우지 말고 살자. 네가 좋게 생각되는 곳을 먼저 택해라. 네가 왼쪽을 택하면 나는 오른쪽을 택할 것이요, 네가 오른쪽을 택하면 나는 왼쪽을 택할 것이다.”(8-9절)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주어진 기회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아브람은 먼저, 화평하는 쪽을 선택했다. 자기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화평하기를 구한 것이다. 더 좋은 곳에 살기를 원하고, 더 좋은 것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곳에 살고, 좋은 것을 가진다 할지라도, 화평이 없으면 모두 쓸데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아브람은 이 화평을 위해서 자기의 권리를 양보했다. 양보함이 없이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보하는 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 손해나는 일이다. 아무도 손해보려 하지 않는 곳에는 진정한 화평이 없다. 다 못하면 반이라도 해야 한다. 내가 전부 가지면 상대방은 가질 것이 없다. 이것이 나눔의 문제요 경제의 문제이다.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양보할 수 없다. 

  ‘미우라 아야꼬’는 일본의 여류 작가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남편의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자기 집 한 쪽에다가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어서 장사를 시작했다. 친절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다. 장사가 너무 잘되어서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여보, 우리 집 장사 잘되는 것은 좋지만, 이러다가는 다른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겠구려. 우리만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시겠소?” ‘미우라’에게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다른 가게로 보냈다. 그리고서는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쓰게 된 소설이 유명한 ‘빙점’(氷點)이다. 이 소설이 베스트 쎌러가 되어서 오히려 더 큰 수입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해서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 하나님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채워 주신다.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11:1)”. 아브람은 세상적인 부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선택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요단 뜰에 비옥한 땅이 있었다.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우선권도 자기에게 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것을 누가 가지든,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재산, 명예, 권세, 그런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 세상에 있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곳에는 결코 참 행복이 없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하는가? 이것을 생각하고 과감히 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롯은 아브람의 말이 떨어지자 동산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어디가 좋을까 사방을 내려다보았다.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비옥한 땅, 요단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롯은 그곳을 택했다. 그 곳이 낙원인 줄 알고, 그 풍요한 땅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다. 롯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소돔. 고모라 까지 옮겨 들어가다가, 결국은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되었다. 올바른 선택과 올바른 결단,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잘못된 길로 가는 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계속 그 길을 달려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가? 선택한 길을 그 길을 가기에 방해가 되는 것을 끊기 위해서, 날마다 결단을 새롭게 하고 있는가? 바로 선택하고 바른 결단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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