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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창세기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야 한다

by ongdalsem 2020. 7. 26.

창세기 2장 1-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Kepler라는 신실한 천문학자의 친구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는 천지 만물은 모두 우연히 생긴 것이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하면 친구에게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Kepler는, 태양계의 모형을 공들여서 만들어 가지고 거실에 놓아두고 친구를 초대했다. 

  며칠 뒤 그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거실에 있는 태양계의 모형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러 개의 행성들이 자기 궤도를 따라서, 질서 정연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한참 바라보고 있던 그 친구가 물었다. "여보게 친구, 이거 누가 만든 것인가? 참 잘 만들었구먼!" Kepler가 대답했다. "이 사람아 그걸 만들기는 누가 만들어, 저절로 생긴 것이지."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자네 지금 나를 놀리나, 어떻게 이런 것이 저절로 생겨나나?" Kepler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 장난감 하나도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네가, 어떻게 이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가?" 

  대 자연의 품 속에서 인간을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셨다. 빛을 만드시고 밤과 낮을 나누셨다.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 궁창을 만드시고, 새들과 물고기들을 만드셨다. 바다와 육지를 만드시고, 땅으로 하여금 각종 식물을 내게 하셨다. 각종 육축들과 짐승들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어 놓으시고, 그 후에 사람을 지으셨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다스리라는 명령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세상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해 주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어떤 기분을 느끼셨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10,12,18,21,25)고 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돌보는 일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특권도 주신 것이다. 다스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임도 져야 하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지어졌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관리할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창조에 있다면, 사람의 즐거움은 잘 다스리는데 있는 것이다. 즉, 일하는 데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일하는 것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이 특권을 잘 누리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어지는 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왜 인생이 고달픔을 호소하는가? 때로 사람들은 말한다. 일 년 삼백 육십 오일,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이냐고.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신 후에,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고,  그 날에 쉬셨다.(창 2:3) 이를 근거로 해서, 훗날에 모세를 통해 안식일 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다. "엿새는 힘써 일할 것이요, 하루는 일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후에, 먼저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쉬고 일을 시작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Life Cycle을 정해 주셨다. 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먼저다. 일을 해서 피곤하기 때문에 쉬기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6+1의 Life Cycle을 주셨다. 엿새는 힘써서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새 힘을 공급받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하다. 7일을 일해도 모자라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일에 즐거움이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이 난다. 

  6일은 일하는 날이요,  하루는 하나님과 함께 즐기는 날인데, 하나님과 함께 쉬어야 하는 그 하루를 잃어버린 것이다. 6+1이 되어야 하는데, 7+0이 된 것이다. 그러니 고달프기만 하고 즐거움이 없다.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아야 한다.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어버렸으면, 그 한 마리를 찾으려는 것이 정상이다. 은화 열 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그중에서 한 개를 잃어버렸으면, 그 한 개를 열심히 찾으려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지극히 정상적인 길을 가기를 포기한 데에 문제가 있다. 그 결과로 Seven day open Business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6+1의 삶을 잃어버리고 7+0의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대중가요 중에 최 희준이 불렀던 노래가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구름 따라 왔다가 정처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가도 가도 사막의 길, 꿈길에도 사막의 길"이라고 노래했다. 이것은 모두 7+0의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하루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노래다. 거기에는 허무만이 남는다. 그러나 6+1을 사는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정처 없이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백 년을 살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하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아야 한다. 6+1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다스리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엿새는 힘껏 일하고 하루는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며, 새 힘을 공급받아서 사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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