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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2/누가복음

빈 방 있습니까?

by ongdalsem 2020. 12. 20.

누가복음 2장 1-7절

 

사람이 세상(世上)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일을 다 아시고 계실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어째서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마리아’라는 처녀(處女)를 찾아가셔서,

그녀로 하여금 아기를 가지게 하셨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보고 그렇게 된 것인 줄 아는 것뿐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豫言)이 있었다.

(참고: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

그런데 하나님은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어떤 여인을 택하지 않으시고,

‘나사렛’지방에 살고 있는 ‘마리아’를 택하셨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잉태한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를 낳았다.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으면,

선지자(先知者)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틀린 것이다.

 

또한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보통집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면,

구차(苟且)하게 외양간에 들어가서 아기를 낳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기를 낳아서 말구유에 뉘어놓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멀쩡한 자기 집, 따듯한 방을 놔두고 누가 그런 짓을 하겠는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낮은 자리에 태어나게 하셨다.

사람들 위에 군림(君臨)하는 모습이 아닌 섬기는 종(從)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의 한 작은 시골 마을인데 거기 사는 처녀를 택하셨고,

아기 예수는 '왕도(王都)인 베들레헴'의 어느 집 외양간에서 태어나 말구유 안에 누이셨다.

'베들레헴'에서 외양간 말구유보다 더 낮은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스도’ 예수는 비천한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잉태 되고,

왕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정확(正確)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리아'가 자기 집 놔두고 뭐하러 그 먼곳으로 가서 아기를 낳을 것인가?

 

그 때 유대 지방(地方)을 포함하여 로마를 다스리던 자는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皇帝)였다.

그는 세금(稅金)을 더 거두어드릴 목적으로 전국에 호적(戶籍) 신고(申告)령을 내렸다.

각각 본적지(本籍地)인 고향으로 돌아가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고향이 ‘베들레헴’이었다.

자연스럽게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갔고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았으며,

하나님은 역사적(歷史的)인 실재(實在)의 사건을 통(通)해 그의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신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베들레헴 성 안에 있는 짐승이 사는 외양간에서 태어나셨다.

사관에 빈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성경이 말씀한다.

호적을 하게 하는 일이 있어야 했고, 호텔에 빈 방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당시 베들레헴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불쌍한 이웃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난한 시골 아낙네가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방 한칸 내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마굿간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야 하고,

말구유라도 있으니 감사하고 거기에 아기를 뉘일 수 밖에!

 

성탄의 사건은 만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사건이다.

크라스마스, 성탄절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오늘도 우리는 그 시절 베들레헴 사람들처럼,

우리를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살고있지는 않는가?

 

어떤 사람이 어린 딸을 데리고 조그만 모텔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에 추위에 얼고 고단해 보이는 한 사람이 빈방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이 말했다. “빈 방 없는데요!”

어린 딸이 그 말을 듣고, “엄마, 내 방 있쟌아? 내 방 내 드려요! 나는 엄마방에서 자면 되지!” 했다.

 

예수님은 죄인 된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셨는데,

나는 내 삶속에 예수께서 계실 자리조차 비워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에게 내어 드릴 빈 방 있습니까?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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