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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시와 수필

세월 유감(有感)

by ongdalsem 2020. 8. 21.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수플란테이션(Souplantation)’이라는 식당엘 자주 간다.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채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식당 분위기는 제법 깔끔하고 좋다. 메뉴는 주로 수프와 야채다.

커피와 각종 소다수들도 준비되어 있다.

육류라고는 치킨누들 수프에 들어있는 약간의 닭고기 가슴살이 전부고,

여러 가지 빵, 샐러드, 파스타, 그리고 구운 감자가 있다.

웰빙족을 겨냥해 창업한 것 같다.

아무튼지 우리는 그 식당에서 각종 수프와 야채, 구운 감자를 맛있게 먹고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를 한다.

다른 식당에 비해서 게살 수프가 짜지 않아서 좋다.

 

나는 농촌에서 자랐기에 어려서부터 고기를 먹어본 일이 별로 없고, 이미 채식에 익숙해져 있다.

생선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고, 가끔 개울에 나가 가재, 메기 등을 잡아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늘 먹는 것이 오이, 호박, 상추, 깻잎, 풋고추, 된장, 고추장, 김치, 그런 것들이었다.

밥은 아침에나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대부분 보리밥이었고,

점심에는 감자나 고구마 삶은 것그리고 저녁에는 옥수수 찐 것이나 죽() 아니면 국수를 먹고 자랐다.

맥이 빠져 기운을 못 차리는 사람을 보고 사흘에 보리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 같다는 말을 하던 시절이었다.

죽도 참 여러 가지였다. 콩나물 죽, 콩죽, 좁쌀죽, 보리죽, 김치죽, 호박죽, 팥죽, 녹두죽, 시금치죽, 시래기죽, 흰죽 등.

 

교포 사회에 잘 알려진 어떤 목사님이 있었다.

그분은 북한에서 살다가 해방 후에 단신 월남해 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후에 남미로 갔다가 다시 이곳 로스엔젤래스에 와서 마지막 목회를 하고 오래 전에 타계했다.

비교적 큰 교회를 섬겼으므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은 없었겠지만 시대적으로 참 험한 세월을 사신 분이다.

그 분은 틈이 나면 친구 목사들과 함께 미국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하루는 그 목사님이 친구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최 목사 우리 참 험한 세월을 보냈지?

북한에서도 그랬고남한으로 내려와서도 그랬고

하지만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네 그려!

그런데 말이야이런 부자 나라 미국에 와서도 아침마다 보리죽이나 먹고 살아야 하니 이게 무슨 꼴인가?”

듣고 있던 친구 목사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 날 그분들이 드신 아침식사는 오트밀이었다.

 

이민을 떠나온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건강을 위해서 밥을 피하고 감자 고구마를 찾는 시대다.

지금 나는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는 일이 많다.

옛날에는 숭늉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우라 했으면 무척이나 서러웠을 것인데.

세월 참 많이 변했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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