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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1/시 가 서

기뻐할 때와 생각할 때

by ongdalsem 2020. 7. 4.

전도서 7장 11-22절

지혜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교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포기할 때,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며,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울 때 주께서 내 심령의 공간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20>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자존심과 교만과 경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없애 주세요 이 시련과 역경을 없애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이렇게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삶에서 내가 가는 출구를 열어주며
내 삶을 발전시키고 내 삶을 변화 시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요한 기도를 망각합니다.
성경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 생각하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시드니 라는 사람은 "고귀한 생각과 함께 있는 사람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고 말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고독할 수도 있고, 고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고독한 것을 생각하면 고독해지지만 고독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고독하지 않게 됩니다.
근심되는 생각을 하면 근심에 빠지게 되지만, 근심 아닌 생각을 하게 되면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이 매사에 좋고, 선하고, 아름다우심을 가르쳐 줍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했습니다.(이사야 55:8-9)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차원과 질을 달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라고 했습니다.(시편 139:17)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까,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참된 삶을 가르쳐 줄까,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잘살도록 만들어 줄까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 했습니다.(예레미야 29:11)

전도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14절)
형통한 날에 기뻐하라는 것은 일이 잘되어 갈 때, 그리고 성공했을 때, 바로 믿고, 바르게 살라는 뜻입니다.
형통하다고 해서 먹고, 놀고, 마시고 인생을 엔조이하는데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업이 잘 될 때, 정신 차려서 바로 믿으라는 것이고, 몸이 건강할 때, 정신 차리고 예수를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좋은 시절에 방종하여 게으르며, 교만하며, 특별히 불신앙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평안한 시대에는 사람들이 육체를 많이 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시대를 당하였으면 언제든지 좋지 못한 시대가 또 올 줄 알고 신앙생활을 착실히 해 나가야 됩니다.
현재 살아가면서 항상 준비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회개시키시기 위하여 오래 참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롬 2:4)

은밀한 데서 보시는 하나님 앞에 항상 단정하게 생활해야 합니다.(마 6:1-4)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에 그것을 즐거워하지 말아야 합니다.(눅 16:15)
지금 여러분은 형통하십니까? 형통한 날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기쁨은 참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전도자는 다시 말하기를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합니다.(17절)
이것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잘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하라는 뜻은 "되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곤고한 때에는 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다음 세 가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의 이유를 밖에서 찾지 말고 먼저 자신 속에서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곤고함을 당해 보아야 자기의 연약을 알게 됩니다.

둘째, 고난당하는 다른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는 위로받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위로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남들을 무시하게 되지만,
환난을 당하게 되면 아무래도 수그러지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게 됩니다.

셋째,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곤고한 날에, 괴로울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몸소 고난을 당하셨고,
또 고난을 치료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허탄한 데 마음을 두지 것입니.(21절)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면 자신을 저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비판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들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조만간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삼하16:11)

사람들은 이웃에게 대한 칭찬보다는 비평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므로,
이웃의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고전4:3)
이웃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것이므로,
남들을 탓하기 전에 먼저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박혀서 미움과 악독으로 평생을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관한 나쁜 소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며,
그러한 왜곡된 사실에 의하여 자신의 견해와 행동을 제약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 자신도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모욕을 들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험담하는 소문과 풍문에 의해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매사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뻐할 것을 기뻐하고, 생객할 것은 생각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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